벌써 1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아빠가 살아계신다면 올해 95세가 되셨을꺼다 감사하게도 90세의 엄마는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셋째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무거운 목소리의 언니는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며 내눈치를 보는 듯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아빠의 이야기라는걸 알아챌 수가 있었다 그때 아빠는 병원에 계셨으니까...
그 몇일 전 세명의 언니들이 설악산 어떤 암자에 1박2일행을 떠났고 아직 어린 셋째언니의 두 아들을 봐주기위해 부모님은 언니집에 머물고 계셨다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 다음을 기약하고 참여하지 못했다 셋째언니 집에서 아침을 드시다가 아빠가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119에 실려 병원에 가신 후 검사를 받고 계신 상황이었다 평소 어떤 지병도 없이 워낙 건강하신 편이라 별걱정 없이 디스크 정도라 생각하고 무심히 내 일상을 살아가던 터였다 그 상황에서 언니의 머뭇거림은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용기를 낸 언니의 첫마디는 아빠가 폐암이라는거였다 듣고 있는데도 무슨말인지 알수도 없고 체감이 되지도 않았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정신이 차려지고 눈물만 났다 아이들이 놀랄까 작은방으로 빨래를 들고 들어가 정리하는 척을 하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었다 순간 정신이 반쩍들었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지....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병원에 줄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다행이 친구의 남편이 그 병원 방사선과에 있었고 아빠의 검사결과에 대해 자세히 알아 봐주겠다는 고마운 말에 조금은 안심하며 기다렸다 이틀 뒤 검사결과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폐가 완전히 망가진상태...구멍이 뚫려 있고 양쪽폐가 모두 최악의 상태인것도 모자라 암덩어리가 어깨와 허리로 전이 되었다는 희망조차 갖지 못하게 철벽을 치는 것 같은 결과에 가족 모두는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그냥 주저 앉을 수만은 없었다 의사선생님과의 의논끝에 방사선 치료부터 해보기로하고 첫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아빠는 치료가 버거우셨는지 폐렴증상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가족들은 긴장으로 나날을 보냈고 나는 일주일째 병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복도에서 떨고만 있었다 큰언니가 내게 신경안정제를 먹이고 때때로 주무르기도 했다 핏기없는 얼굴로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언니들은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고...난 그때 민폐녀였던 것 같다 몇일을 중환자실에서 보낸 아빠는 다행히 일반병실로 돌아왔다 가족들과 의사선생님의 의논 끝에 치료는 중단하고 통증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신이 번쩍들었다 시간이 많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들이 어리고 지방에 살고 있던 나는 매일을 아빠곁에 있을 수 없었고 최대한 내가 할수있는 일을 찾아야했다 엄마가 아빠 곁을 매일 지키고 있었지만 우리5남매는 돌아가며 아빠의 곁을 지켰다 지방에 살고있던 둘째언니와 나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밑반찬이며 아빠가 좋아하는 누룽지를 굽고 바나나우유를 사고 엄마의 간식을 사서 아빠에게 갔다 대구에 있던 언니들은 수시로 엄마의 끼니를 챙기고 들여다보고 경기도에 살고있는 오빠는 주말마다 내려왔다 나는 병원에 갈때마다 아빠곁에 누워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막내딸의 철없음을 고스란히 내보였다 아픈 아빠를 한쪽으로 밀쳐놓고 아빠의 다리를 베고누워 낮잠을 자기도하고 아무렇지 않게 엄마와 수다를 떨었다 아빠가 병원을 가신지 한달쯤 지났을까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고 대소변을 침대에서 해결해야만 하는때가 왔다 일주일 두번정도 방문 하는 내가 반가웠던지 아빠는 꼭 내가 병원에 올때 큰볼일을 보셔서 내가 치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왜 막내만오면 볼일을 보느냐며 핀잔을 주셨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볼일은 보고싶을때 보는거지 별소리 다한다고 다시는 그런소리 하지말라고 다시 핀잔을 되돌려 드렸다 그렇게 병원에 두달정도 계셨을까 아빠를 집근처 병원에 간병인이 있는 병실로 옮겼는데 간병인이 성의없게 돌보는걸 엄마가 보시고는 많이우셔서 그나마 평이좋은 요양병원으로 다시 아빠를 옮겨야만 했다 아빠는 끝까지 자기의 병이 뭔지도 모른채 가족들의 판단에 그저 모든걸 맡기셨다 아빠가 본인의 병을 몰랐음에도 병원에 계실때 모두들 모아두고 유언을 하셨다 아빠의 재산은 모두 엄마에게 남긴다고...연명치료는 어떠한 경우에도 받지 않겠다고.....아빠다운 유언이다 평생 엄마를 사랑으로 쳐다보던 꿀떨어지는 아빠의 눈빛에서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고 남에게 신세지는 일은 절대하지 않는 남이 어려운일은 지나치지 않는 우리아빠..그런아빠가 내린 결정은 아빠다웠다 요양병원으로 옮긴 아빠의 상태는 급격히 안좋아지셨다 폐암이 그러하단다 어느순간 갑자기 안좋아지는.......아빠가 언니집에서 병원으로 가셨기에 집에 가고싶어 하셔서 설날쯔음 아빠를 잠시 집으로 모시고 가려고 산소호흡기며 간병인이며 모두 준비를 마친 어느날 갑자기 중환자실로 가셨고 우리는 모두 긴장상태로 아빠의 곁을 돌아가며 24시간 지키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서 머물고 있었고 언니들과 돌아가며 병실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주일쯤 되었을때 아침에 아이들의 아침을 챙기고 있는데 밤새 아빠의 곁을 지킨 큰언니가 들어왔다 나는 얼른 엄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아빠가 혼자계시니까......지친엄마를 휴게실에 모셔두고 병실로 들어갔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미동도 없는 아빠에게 다가가 아침인사를 하고 귀에대고 속삭였다 '아빠...막내왔네...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했고 아빠 너무 많이 사랑해. 아빠가 먼저 좋은 곳으로 가서 큰집 짓고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꼭 찾아갈께 기다리고 있어' 내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는지 순간 미동도 없던 아빠가 호흡기가 들썩거릴만큼 큰 숨을 내뱉었다 순간 너무 놀라서 뒤로 튕기듯 물러섰고 순간 아빠의 맥박이 일직선을 긋고 있었다 나는 의사선생님과 엄마를 불렀고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의사선생님이 언니들이 도착했을때 사망선고를 하셨고 우리는 눈물을 흘리기도 전에 뭔가를 진행해야만 했다 눈물이 나올틈도 없었다 오빠와 언니들이 있다는건 행운이었다 나는 오롯이 슬퍼만해도 됫고 오빠와 언니들의 일처리로 뭔가가 착착 진행이되었다 파계사 납골당으로 모시기로 했었기 때문에 파계사에서 49제도 지내기로하고 연락을 넣었더니 스님한분이 장례식장으로 오셔서 법문을 해주셨다 불경을 외우시는 스님뒤에서 열심히 따라했다 내가할 수있는게 그게 전부였으니까.. 아빠가 조금이라도 불안해하지않고 편안하기를 기도하면서....기도를 마친 스님께서 뒤로 돌아 앉으시며 원칙은 첫날이랑 발인날 함께 하시는데 따님의 불경소리가 마음에 와닿아 매일 오시겠다는 감사한 말씀을 해주시고 그약속을 지켜주셨다 그 인연으로 스님을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았고 바느질을 배우며 스님께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어 한땀한땀 바느질로 목도리하나를 완성했다 몇년이 지난 상태였고 잠시 파계사에 공부하시러 오신 지나치는 인연이셨지만 언젠가는 만날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만든 목도리를 몇년째 보관하던중 우연히 소식을 알게되어 두해전 아빠가 돌아기시고 10년이 넘어서야 스님을 재회하고 목도리를 드릴수가 있었다....스님은 수많은 인연중에 한인연 이었을지 모르나 나는 내아빠의 마지막길을 함께 해주신 귀한 인연이었으리라...
무사히 장례를 마치고 49제를 지냈다 불경소리를 좋아하던 아빠였으니까 49제 기간동안 불안하지 않으셨으리라 믿으며...사랑꾼이었던 아빠는 49제 기간동안 몇번을 엄마꿈에 나타나 같이 가자고 졸랐다고 한다...엄마는 그런 아빠를 달래며 곧 갈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단다 못말리는 사랑꾼 우리아빠...
아빠가 돌아가시고 3년은 울고 다녔던것같다 뜬금없이 눈물이 나고 서럽고 보고싶고 주체할수 없는 감정에 당황하고....평생 흘릴 눈물을 그때 거의 다 훌렸던것 같다....아빠가 돌아가시고 3년을 제사가 돌아오기 일주일전쯤에 내꿈에 찾아오셨다
2번째 제사가 다가오던 그때도 찾아오셔서 내게 말씀하셨다 '아빠 이제 안아파'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아빠의 그말을....다행이다...3년을 그렇게 꼬박 찾아오시더니 4년째부터 찾아오지 않으셨다 몇해전 내가 힘든일로 나자신과 싸우고 있을때 한번 더 오셨었다 초록색 얼굴을 하고서는 가만히 아무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가셨다 마음이 안좋았다 좋은꿈은 아니었을테다 아빠께 죄송한 마음이다 그때의 나는.....이제는 잘살고 있으니 아빠도 안심하고 좋은 집에서 편히 살고 계시겠지..평생 남에게 싫은소리 한번 못하고 남을 위해 가족을위해 사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빠....지금도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싶다..아빠..우리 꼭 다시 만나자....막내딸이 너무 많이 사랑해.....